수필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土曜 隨筆) 수필가 이태호 ‘벗(朋友)’
기사입력  2024/02/25 [01:20] 최종편집    수필가 이태호

 

▲ 수필가 이태호

 

행금산(친구 소유의 산) 자락 양지 녘에 집이 한 채 있다. 바다색 지붕을 머리에 이고 거만하지 않게 앉아있다. 죽마고우의 생가다. 아침밥을 일찍 챙기고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벗을 만나러 나섰다.

 

길은, 무논과 염전을 양옆에 두고 신작로로 연결된 농로다. 초등학교 시절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던 논둑길이다. 지금은 경지정리로 면적이 훨씬 넓어졌다. 가끔 문인들이 찾아오면 나문재로 휘덮인 자줏빛 개펄에서 시어를 낚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사철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유년을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언제나 정겹다.

 

염전 한편으로 너른 개펄을 펼치고, 너머에는 몽돌해변이 있다. 그곳에서는 연실 살진 갯바람이 살랑거리며 넘어온다. 퉁퉁마디나 해홍나물 같은, 염생식물들을 살찌우려는 것이다.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그 때문에 대자연이 칠하는 색감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개고지’(옛 문언에는 佳谷이다. 계절풍이 닿지 않아 비옥한 농토가 있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부촌)의 너른 들판의 벼 이삭 또한, 얼마나 열심히 겸손을 가르쳤던가.

 

친구는 집에 있었다. 내려오자 곧바로 아내와 함께 조상님의 음택을 둘러보았다고 했다. 안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실행으로 옮겼다는 선산에 올랐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조상의 묘지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봉분이 아닌 평장 법(平葬法)을 활용했다. 그야말로 자연이 부른 상상력과 조형미가 어우러진 근린공원과 같았다.

 

동산 초입 반음지에는 큼직한 자연석이 누워 있다. 해서체로 쓴 필체가 범상치 않다. 특히, 음각한 친구 형님의 시비를 대할 때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비()는 세워져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을 깬, 마치 와불처럼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친구의 지혜와 용기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산 옆댕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는 예술인의 쉼터를 건설할 계획이란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어서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부러움 가득한 마음으로 친구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는 뭔가 뿌리 깊은 창조본능이란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미쳐 꺼낼 틈이 없었을 뿐이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생활이란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로 볼 때 글을 쓰는 나로서는 모든 행위를 보편적인 법칙에 따른다는 것은 가당치 않을 것 같았다. 당분간 술을 멀리할 처지지만, 오늘만은 한잔 기울이고 싶었다. 친구의 술잔을 채워준 다음, 평소 즐겨 암송하던 당나라 낭만주의 시인, 이백의 우인회숙(友人會宿) 오행 고시를 떠올려보았다.

 

우린 술잔을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리에 어긋나는 말을 할 경우 그건 아니지!”라고 부정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지!”라는 긍정도 인색하지 않았다. 금방 만난 것 같은데 반나절이 훨씬 지나있었다.

 

지루하지 않은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마도 부분의 합보다 전체에 치중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로 볼 때 친구와 함께한 지금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이가 차오를수록 흉금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다만, 친구를 향한 아쉬움도 있다. 종심(從心)에 이르렀는데도 도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에게 낙향을 결심하며 지은, 시 한 수를 읊어 주었다.

 

(나 이제)

이제 바다로 떠나야겠다

겹겹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또 다른 껍질을 찾아야겠다

 

해송 틈새 하나 빌려 나지막한 지붕을 덮고

갈라진 맨발 데리고

백사장을 걸어야겠다

 

항해를 끝내기에 마땅한 시각이다

모래 등성이 노을에 물들면

쓸쓸한 마음 하나 그늘에 밀어놓고

멀리 미역 줄기 춤추는 무인도를 꿈꾸어야겠다

지금은 멀리 두었던 눈길 거두고

내 작은 목선의 닻을 내려야 할 때이다

 

 

이태호 프로필

좋은 생각대상 수상

현대문학문학 대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그늘 장수출간, 공저 300여 편

 

 

광고
ⓒ 모닝선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밴드 밴드 구글+ 구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서울>
* 강남구 * 강동구 * 강북구
* 강서구 * 관악구 * 광진구
* 구로구 * 금천구 * 노원구
* 도봉구 * 동대문구 * 동작구
* 마포구 * 서대문구 * 서초구
* 성동구 * 성북구 * 송파구
* 양천구 * 영등포구 * 용산구
* 은평구 * 종로구 * 중구
* 중랑구
<수도권>
* 고양시 * 광명시 * 광주시
* 구리시 * 군포시 * 김포시
* 남양주시 * 동두천시 * 부천시
* 성남시 * 수원시 * 시흥시
* 안산시 * 안성시 * 안양시
* 양주시 * 오산시 * 용인시
* 의왕시 * 의정부시 * 이천시
* 파주시 * 평택시 * 포천시
* 하남시 * 화성시
 
 
 
 
* 경기 * 강원 * 경남
* 경북 * 충남 * 충북
* 전북 * 전남 * 제주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조국혁신당 * 진보당
<방송사>
* KBS * MBC * SBS
* CBS * EBS
<신문사>
* 조선 * 동아 * 중앙
* 한국 * 국민 * 경향
* 서울 * 문화 * 내일
* 한겨례 * 매경 * 한경
* jtbc
<방송>
* 자유북한방송 * 자유조선방송
* 자유아시아방송 * 열린북한방송
* 북한개혁방송 * 통일방송
* 전국경제인연합회 * 대한상공회의소
* 한국무역협회 * 중소기업중앙회
* 한국경영자총협회 * 전국은행연합회
* 중소기업진흥공단 * 중소기업청
* 신용보증기금 * 기술보증기금
* 중소기업 정책자금 * 한국 엔젤투자협회
* 한상네트워크 * 코트라 홍콩무역관
* 코리아넷 * 중국 한국상회
* 한중협회 * 한중민간경제포럼
* 중국 거시정보망 * 차이나코리아
* 재외동포협력센터
<포탈>
* 바이두 * 소후닷컴
* 왕이닷컴 * 시나닷컴
* 텅쉰왕 * 텐센트
* 위챗
<전자상거래>
* 알리바바 한국관
* 텐마오 * 한국관
* 타오바오 * 알리페이
* 알리익스프레스 * 쑤닝이거우
* 웨이핀후이 * 징둥상청
* 뱅굿 * 미니인더박스
* 올바이 * 1688 닷컴
<언론>
* 인민일보 * 신화통신
* 환구시보 * 중앙TV
<은행>
* 공상은행 * 건설은행
* 농업은행 * 중국은행
* 초상은행
 
 
* 경실련 * 참여연대
* 한국소비자원 * 한국소비자연맹
* 소비자시민모임 * 녹색소비자연대
* 한국여성소비자연합
 
 
 
 
* 가톨릭대 * 건국대 * 경기대
* 경희대 * 고려대 * 광운대
* 국민대 * 동국대 * 명지대
* 삼육대 * 상명대 * 서강대
* 서경대 * 서울대 * 성균관대
* 세종대 * 숭실대 * 연세대
* 외국어대 * 중앙대 * 한성대
* 한양대 * 홍익대
* 서울교육대 * 서울과학기술대
* 서울시립대 * 한국체육대
* 방송통신대
 
 
 
 
<은행>
* 한국은행 * 국민은행 * 우리은행
* 신한은행 * 하나은행
* 기업은행 * 씨티은행 * SC제일은행
* *HSBC * BNK경남은행 * 대구은행
* 광주은행 * 부산은행 * 전북은행
* 제주은행 * 농협 * 수협
* 신협 * 새마을 * 우체국
* 산업은행
<카드사>
* 비씨카드 * 삼성카드 * 현대카드
* 롯데카드 * 국민카드 * 우리카드
* 신한카드 * 농협카드 * 씨티카드
 
 
 
 
* 서울대병원 * 연세대 세브란스
* 고려대의료원 * 삼성서울병원
* 삼성의료원 * 경희의료원
* 한양대병원 * 인제대백병원
* 가톨릭중앙의료원 * 이화여자대의료원
* 하나로의료재단 * 서울적십자병원
* 원자력병원 * 차병원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 SM * YG * JYP
* DSP * 큐브 * 스타십
* 빅히트 * 울림 * 티오피
* 스타제국 * 플레디스 * 엠에스팀
* 페이스엔 * 벨액터스 * 쟈니스
* IOK * 쇼브라더스
 
 
 
 
* CJE&M * 인디스토리
* 쇼박스 *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