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금산(친구 소유의 산) 자락 양지 녘에 집이 한 채 있다. 바다색 지붕을 머리에 이고 거만하지 않게 앉아있다. 죽마고우의 생가다. 아침밥을 일찍 챙기고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벗을 만나러 나섰다.
길은, 무논과 염전을 양옆에 두고 신작로로 연결된 농로다. 초등학교 시절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던 논둑길이다. 지금은 경지정리로 면적이 훨씬 넓어졌다. 가끔 문인들이 찾아오면 나문재로 휘덮인 자줏빛 개펄에서 시어를 낚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사철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유년을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언제나 정겹다.
염전 한편으로 너른 개펄을 펼치고, 너머에는 몽돌해변이 있다. 그곳에서는 연실 살진 갯바람이 살랑거리며 넘어온다. 퉁퉁마디나 해홍나물 같은, 염생식물들을 살찌우려는 것이다.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그 때문에 대자연이 칠하는 색감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개고지’(옛 문언에는 ‘佳谷’이다. 계절풍이 닿지 않아 비옥한 농토가 있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부촌)의 너른 들판의 벼 이삭 또한, 얼마나 열심히 겸손을 가르쳤던가.
친구는 집에 있었다. 내려오자 곧바로 아내와 함께 조상님의 음택을 둘러보았다고 했다. 안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실행으로 옮겼다는 선산에 올랐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조상의 묘지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봉분이 아닌 평장 법(平葬法)을 활용했다. 그야말로 자연이 부른 상상력과 조형미가 어우러진 근린공원과 같았다.
동산 초입 반음지에는 큼직한 자연석이 누워 있다. 해서체로 쓴 필체가 범상치 않다. 특히, 음각한 친구 형님의 시비를 대할 때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비(碑)는 세워져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을 깬, 마치 와불처럼 편안하게 누워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친구의 지혜와 용기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산 옆댕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는 ‘예술인의 쉼터’를 건설할 계획이란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어서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부러움 가득한 마음으로 친구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는 뭔가 뿌리 깊은 창조본능이란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미쳐 꺼낼 틈이 없었을 뿐이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생활이란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로 볼 때 글을 쓰는 나로서는 모든 행위를 보편적인 법칙에 따른다는 것은 가당치 않을 것 같았다. 당분간 술을 멀리할 처지지만, 오늘만은 한잔 기울이고 싶었다. 친구의 술잔을 채워준 다음, 평소 즐겨 암송하던 당나라 낭만주의 시인, 이백의 우인회숙(友人會宿) 오행 고시를 떠올려보았다.
우린 술잔을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리에 어긋나는 말을 할 경우 “그건 아니지!”라고 부정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지!”라는 긍정도 인색하지 않았다. 금방 만난 것 같은데 반나절이 훨씬 지나있었다.
지루하지 않은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마도 부분의 합보다 전체에 치중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로 볼 때 친구와 함께한 지금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이가 차오를수록 흉금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다만, 친구를 향한 아쉬움도 있다. 종심(從心)에 이르렀는데도 도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에게 낙향을 결심하며 지은, 시 한 수를 읊어 주었다.
(나 이제)
이제 바다로 떠나야겠다
겹겹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또 다른 껍질을 찾아야겠다
해송 틈새 하나 빌려 나지막한 지붕을 덮고
갈라진 맨발 데리고
백사장을 걸어야겠다
항해를 끝내기에 마땅한 시각이다
모래 등성이 노을에 물들면
쓸쓸한 마음 하나 그늘에 밀어놓고
멀리 미역 줄기 춤추는 무인도를 꿈꾸어야겠다
지금은 멀리 두었던 눈길 거두고
내 작은 목선의 닻을 내려야 할 때이다
■ 이태호 프로필
「좋은 생각」 대상 수상
「현대문학」 문학 대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그늘 장수』출간, 공저 30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