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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림 칼럼> 그림 같은 남편, 그림자 같은 아내
기사입력  2023/08/22 [13:20] 최종편집    한상림 칼럼니스트

 

▲  한상림 칼럼니스트    

 

 

40주년도 특별 이벤트 없이

 

해마다 맞는 결혼기념일이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의미 부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한 지난날이 자꾸만 회상된다. 오래 함께 해서였을까? 아니면 함께 늙어가는 모습에서 부모님이 살아온 모습이 읽혀져서일까?

 

며칠 전에 반려견 통이의 생일이었다. 딸아이가 강아지용 케이크에 통이의 10주년 생일을 축하합니다를 넣어서 생파’(생일파티)를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케이크를 맞춰 와서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찍었지만, 생일이 뭔지 알 수 없는 통이는 케이크와 카메라 렌즈를 전혀 바라보지 않았다.

 

너는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조차 모르면서 통이 생일만 그리 챙기니?” 반려견 통이는 우리 가족이 된 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통이라는 이름처럼, 통이를 중심으로 수시로 소통하게 된다.

 

통이는 반려동물이라기보다 우리에겐 가족이다. 그만큼 기쁨을 주고 행복함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내 가슴속에는 종종 통이가 하늘나라로 간 아들놈이 반려견이 되어서 내 곁으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나는 약혼 후 1, 결혼 후 40년을 함께 하면서 신혼 초 아이들 입학 전까지는 주말부부, 혹은 해외 근무로 인하여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았었다. 1주년 결혼기념일부터 제대로 챙기지 못하더니, 40주년도 특별 이벤트 없이 지낼 예정이다.

 

사실 소소한 재미가 없는 남편이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건 고사하고 아예 모른 척 지나갔다. 남편의 지론은 평상시 잘하면 되지, 꼭 기념일에 챙기고 잘해줘야만 하냐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리 말할 만큼 당당한지 모르지만, 아내와 아이들 엄마이기 이전에 결혼 전 나를 한 여자로서 선택한 남편이 아닌가?

 

40대 후반에 늦깎이로 작가가 되어 글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첫 아이를 잃고 난 후였다. 생떼 같은 아이를 보낸 후 살길은 그저 독백처럼 쏟아지는 아픔을 글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중견 작가가 되어 꿈을 이루었지만, 20여 년 긴 과정은 그리 짧지 않은 고난의 시간이다.

 

30대 초반의 나는 인생의 경쟁자를 남편으로 생각했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건축시공기술사시험에 합격하여 참으로 멋져 보였다. 반면에 아이 셋을 낳는 동안 푹 퍼진 아줌마인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제자리에서 맴돌다 추락한 꿈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늦둥이를 임신한 7개월째 무덥던 여름날 우울증까지 와 낡은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서 밤하늘을 보며 울었다. 그다음 날 남편은 소국을 한 묶음 사다 주었다. 아마도 내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슬며시 시킨 듯하다. 그게 남편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꽃다발이다.

 

▲  pixabay.com 


 

아이 넷을 혼자 양육하는 건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종이접기와 성경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5평 작은 아파트에서 초등학생 과외를 하여 돈도 벌었다. 나름 성취감을 높여가는데, 마흔 살 늦은 나이에 넷째인 늦둥이 딸이 태어난 거다.

 

아이 셋도 벅찬데, 10년 후로 후진하여 아이 넷을 혼자 양육하는 건 대단한 용기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도 남편은 지방 현장 근무라서 1-2주 한 번씩 다녀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결혼 20주년을 며칠 앞두고 고2 첫아들을 잃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던 우리 가족에게 이보다 굴곡진 날은 앞으로도 더 없을 거다. 미스테리한 아들의 죽음은 꺼내기조차 힘들어 가슴에 묻고 살았다. 96일은 아들의 기일이고 918일은 결혼기념일이다. 그 해처럼 처서가 지나고 조석으로 서늘한 기온이 느껴질 즈음엔 고질병처럼 우울해진다.

 

어쩌면 이런 나의 고질병보다 남편의 상처가 더 깊을지도 모른다.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노래를 들을 때마다 남편을 떠올리게 된다. 가슴에 묻혀 있는 아들에 대한 고통은 나와 마찬가지일 텐데, 서로 조심스러워 아이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위로의 말조차 하지 못한다.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은 후 40년이 지난 지금, 거울에는 아주 낯선 초로의 여자가 서 있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낯선 드라마 속 여자 같다. 늘어난 주름살과 희끗한 머리카락의 두루뭉술한 여자가 측은하다.

 

어쩌다 그렇게 망가졌냐고 거울 앞 여자에게 따져 물어봐도 대답 없다. 그 모습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늙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땐 섬뜩해진다. 20년 전 세상을 떠난 시아버지 모습과 너무 닮았다.

 

잘생긴 외모와 우렁찬 목소리로 엄했던 시아버지는 내가 결혼하던 때만 해도 참으로 미남이고 멋진 분이었다. 그러나 환갑이 지난 후 급격하게 나빠진 건강으로 칠십에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늙어가면서 아버지를 닮고, 여자는 어머니를 닮아간다.

 

호랑이처럼 당당하던 시아버지가 늙음 앞에서는 아기처럼 순한 양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은 칠십을 바라보는 남편이 나와 아이들 앞에서 여전히 당당한 점이다.

 

부부는 남자와 여자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가족이 되지만, 다시 헤어질 때는 남남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으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수없는 남남을 경험하며 아웅다웅 살았다.

 

사랑을 가꾸던 때가 그립다.

 

해외 근무 2년 동안 기다리면서 매일 편지를 쓰고 사랑을 가꾸던 때가 그립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오로지 둘만의 사랑에 애타게 서로를 찾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방에서 남남 아닌 남처럼 지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가 문화를 즐기는 패턴도 달라졌다.

 

남편은 유튜브를 즐겨 보면서 나름대로 전문 분야를 터득하고 연구한다. 반면에 나는 안방에서 혼자 책을 쌓아놓고 밤낮 수시로 글을 쓰고 책을 본다.

 

남편은 지금의 나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모른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아내들은 늙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측은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눈 뜨면 매일 여기저기 쑤신다면서, 마치 내가 엄마라도 되는 양 엄살 아닌 투정을 부린다.

 

사실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다. 비가역적인 노화현상 앞에서 자꾸만 아프다고 말하면 짜증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9988234’를 꿈꾼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는 게 그리 쉽겠는가.

 

처음 시댁에서 분가하여 부천시 송내역 부근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였다. 남편은 종로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1시간 이상 출퇴근하면서 1호선 인천행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때는 해외 근무로 2년 동안 떨어졌다 시작한 신혼이니 콩깍지를 쓴 때였다. “전철 안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자기처럼 예쁜 여자는 없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 말 한마디가 평생 가슴에서 마르지 않는 남편의 샘물이다. 메말라가는 남편의 사랑에 갈증을 느끼던 어느 날 투정을 부렸었다. 아직도 사랑 타령이냐고 핀잔했다. 이후 남편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을 절대로 꺼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부부가 사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 부부의 모습에는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다. 양가 부모님도 그림자처럼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며 사셨다.

 

▲ pixabay.com 


 

두 어머니 일기에서 깨달았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시어머님은 구석구석 메모한 일기장과 단 한 장도 버리지 않은 영수증, 관리비 내역서까지 다 보관해 놓으셨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당신 인생을 정리한 일기장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시아버지가 지방 학교에 근무하며 한 달에 한 번 오갈 때,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를 업고 쓴 사랑 편지가 있다. 친정어머니는 87세로 혼자 살고 계시지만, 신혼 때 아버지가 군대 가시고 고된 시집살이 속에서 나를 혼자 기르시면서 써 둔 일기장이 있다. 그때 일기장 속 스물한 살 어머니 역시 아버지를 기다리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부부의 사랑은 시대가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음을 두 어머니 일기에서 깨달았다. 아마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나 책에서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 지금의 나처럼 지나간 엄마가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굳이 왜 엄마가 만든 책은 읽지 않고 무관심하냐고 묻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깨달음은 시간을 기다려야 얻기 때문이다.

 

그림 같은 남편, 그림자 같은 아내, 우리 부부는 그로서도 족히 행복하다. 삼 남매 아이들은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여 그저 바라만 봐도 뿌듯하다. 사위와 딸아이가 오면 여섯 식구가 두레상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손수 만든 음식으로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 이제 곧 아들도 좋은 짝을 만나 며느리를 보고, 늦둥이 딸아이도 취업해 결혼하고 사위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이 욕심이라면 가장 큰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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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23/08/22 [13:51] 수정 삭제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가님의 글을 보며 저도 그보다는 짧지만 지나온 남편과의 시간을 되돌이켜 보네요. 7년의 연애시절과 그 시절을 갚으며 살아온 20년의 결혼생활. 좀 더 내려놓고 받아들여야겠구나 하는 깨달음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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