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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수필가 김명희 ‘내 잔이 넘친다’
기사입력  2024/03/30 [00:36] 최종편집    수필가 김명희

델포이 무녀와 이스라엘 예언자

 

세계의 '배꼽(옴파로스)이라고 불리던 그리스 고대 도시, 델포이에 다녀왔다. 델포이, 하면 신탁이 떠오른다. 델포이 신탁은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을 예언했고, 소크라테스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선언해 널리 알려져 있다. 아폴론 신전 앞에 새겨져 있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로도 유명하다.

 

▲ 수필가 김명희    

아폴론 신전은 파르나소스산 중턱에 있었다. 현재는 기둥 여섯 개와 기단만 남아 있는데,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지하 입구에서 중간 지점에 이르면 피티아가 신탁받은 장소가 나옵니다. 피티아는 샘물을 한 잔 마시고, 월계수 잎을 씹어 먹은 후, 지하 틈새에서 나오는 가스를 마시고 삼각대에 앉아 예언을 했죠."

 

피티아는 아폴론 신전의 모든 여사제를 일컫는 명칭이다. 아폴론이 델포이의 주신(主神)이 되기 전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큰 왕뱀 피톤이라는 자식이 있었는데, 그 아내 이름이 피티아.

 

이 왕뱀 부부는 파르나소스 산기슭에 사는 무녀를 찾아오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늘 위협적이었다. 아폴론은 수컷 피톤은 죽이고, 암컷 피티아는 사람이 되게 한 뒤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이것이 델포이 신탁의 시작이다. 그 후 델포이에서는 신탁을 내리는 모든 여사제를 피티아라 부르게 되었다.

 

아폴론 시대부터 서기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이교 숭배 금지령을 내리기 전까지, 피티아는 그리스 세계에서 존경받는 여성 종교인이었다. 나라의 제전이나 큰 경기가 있을 때,상석에 앉았다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신탁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중요한 일도 하지 않았다. 입법, 전쟁, 식민지 원정, 길흉 등 왕실은 물론 개인들도 신탁받은 뒤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특히 델포이 신탁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그리스의 폴리스뿐 아니라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도 많은 봉헌물을 가지고 사절단이 찾아왔다.

 

헤르도토스의 <<역사>>에 보면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보낸 봉헌물의 규모는 금괴 117개를 비롯하여 실로 어마어마하다(152-54).신전 아래쪽에 보물창고가 따로 있는 것만 봐도, 옛 아폴론 신전의 부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받았던, 델포이 신탁의 탁월함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예언의 신 아폴론? 신비한 카스타리아 샘물? 월계수 이파리? 가스(증기)?

 

많은 문화 연구자와 고고학 발굴 팀이 백여 년 동안 끈질기게 그 답을 찾아 나섰다. 1996년 지질학자, 고고학자, 화학자가 힘을 합쳐, 마침내 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 하나 있다. 아폴론 신전 아래 단층을 통해, 에틸렌 가스와 여러 기체가 땅 위 갈라진 틈새로 새 나온다는 것이다.

 

피티아가 증기(프네우마 pneuma)를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신탁을 내렸다는 기록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다. 피티아는 깨어난 뒤 자신이 무슨 말을 한지조차 몰랐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을 듣고 전달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사제다.

 

'영웅전'으로 널리 알려진 플루타르코스도 델포이의 아폴론 사제였다(서기 105-126). 그는 철학자 플라톤과 지리학자 스트라보와 함께 델포이 신탁의 예언적 영감이, 땅 밑의 증기와 관련이 있다는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한겨레 신문 2003825일 이인식. '과학, 델포이 신화를 증명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3107쪽에서 재인용).

 

그렇다면 피티아의 신탁과 성경의 예언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산 중턱에 앉아 신전보다 더 높은 키를 자랑하는 진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또렷한 자기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메시지를 받고 전했다. 무아지경 상태가 아니었다.

 

반면 피티아는 자의식이 없는 환각 상태에서 신탁을 내렸다. 그건 아폴론이 그 순간 그녀의 몸과 정신을 기계적으로 사용한 셈이 된다. 성경의 신은 그렇게 사람을 부리지 않는다. 예언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성과 의지를 오롯이 사용한다(이스라엘의 선지자. 레온우드).신의 마음과 뜻을 바르게 전하도록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줬을 뿐이다.

 

피티아와 성경의 예언자는 신의 말씀을 듣고 전달한다는 입장에서는 동일하다하지만 그들에게 신탁을 내린 신의 성품은 다르다한데 미켈란젤로는 왜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이스라엘 예언자 일곱 명과 함께 다섯 명의 이방의 무녀(巫女)를 그려놓았을까?

 

 

 

그 다섯 명 중 한 명이 델포이의 무녀다. 이것은 내가 바티칸에 갔을 때 든 의문의 한 조각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델포이에서 피티아를 만난 순간, 바티칸 천장 벽화가 내 기억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어떤 이는 메시아의 구원이 이스라엘에만 있는 게 아니고, 온 세계에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다섯 명의 무녀도 메시아 탄생을 예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야훼는 이방의 무녀에게 자신의 말을 위탁할 분이 아니다. 그들을 경계하라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씀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기 때문이다(신명기 18:9-12).

 

장래 일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예언자를 찾아다닐 것이다. 용한 예언자가 있다면 세상의 중심 델포이가 아니라, 이 세상 끝이라도 바리바리 보물을 싸 들고 찾아가 신의 답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고.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미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전도서 7:14).

 

내가 믿고 있는 신이 완전하고 선한 신이라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분이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하면서 오늘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족하다. 내 잔이 넘친다.

 

 

김명희 프로필

시집 <꽃밭에 우산>

한국 산문 회원

한국디지털문인협회 희망글쓰기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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