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엄마는 가장 힘든 삶의 고비를 통과하던 중
그녀의 한 ‘그 긴시간 동안 한마음으로’ 기다려줘
신세한탄 애타게 찾던 ‘옥자엄마 남편 망자 신세’
사람 사는 냄새가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게 감돌던’
부대끼며 보듬고 애환 같이한 정답던 이웃 사람들
북아현동 기댈 어깨 그 골목! ‘가슴 시리게 옛회상’
이마 맞대고 살던 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 한 인간이 깊이 절망하는 모습을 난생처음 목격했던 그때가 생각날 때면, 기댈 어깨 내어주고 시린 등 덮어주던 그 골목이 가슴 뻐근하도록 그리워진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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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줄놀이 옥자 ‘삽화처럼 떠오른다’
또 시작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골목 맨 위에 사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조용한 동네를 온통 휘젓고 있다. 오늘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은 바로 옥자 엄마다.
저녁나절, 옥자가 입이 댓 발은 나온 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가는 것을 본 엄마는 “오늘도 잠은 다 잤구나” 하셨다. 술에 취한 채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온 동네를 울리는 날이면 엄마는 장난치며 깔깔대는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곤 하셨다.
마당에 퍼질러 앉은 채 그녀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면 동네 사람 중 누군가가 나서서 나와 같은 반이었던 여덟 살짜리 옥자와 어린 동생을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울먹울먹하는 아이들을 달래 저녁을 먹이고, 토닥토닥 잠을 재우던 사람들은 “저 여편네가 또 도졌네, 도졌어” 하면서도 늘 그녀를 불쌍히 여기곤 하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옥자는 아버지가 없었다.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면 몇 년 전 막내를 낳은 뒤 뱃일을 하러 나갔다가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핏덩이 아이를 여동생에게 맡기곤 남편을 찾아 사방팔방 찾으러 다녔지만, 끝내 소식을 듣지 못했단다.
분명 배에서 내렸는데 종적이 묘연한 것이었다. 굿판을 벌이고, 용하다고 하는 점쟁이를 찾아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낮에는 이런저런 삯일을 얻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한다며 부지런을 떨다가도 저녁이 되어 집집마다 가족들이 귀가할 즈음이면 안절부절못하며 골목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괜히 연탄재나 마당에 놓인 세숫대야를 발로 차기도 하여, 친구가 있는 그 집이 무섭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소란을 피우던 옥자 엄마를 동네 사람들은 나무라지 않고 그저 감싸고 들었다. 옆 동네 사람들이 저런 사람을 쫓아내지 않고 어찌 그냥 두고 보느냐고 하면, 모두들 “천성은 착한 사람이니 그런 소리 말라”며 펄쩍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옥자 엄마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터널을 통과하던 중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갑자기 남편이 사라지고, 생떼 같은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겨진 그 황망함을 감당할 수 없어 그렇게 술로 눈물로 풀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았던 이들은 그녀의 한이 다 풀리고 진정되기를 그 긴 시간 동안 한마음으로 기다려주었다.
악다구니 쓰며 우는 소리가 길어진다 싶으면 동네 사람 누군가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신물이 나도록 듣고 또 들었던, 신세 한탄하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그런 다음 날은 엄마가 콩나물국을 끓여 그 집에 가져다주곤 하였다.
● 슬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쯧쯧.” 등을 토닥여주던 이가 안타까워하는 말을 하면,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던 그녀의 옆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어찌나 애처로운지, 슬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느껴지곤 하였다.
정답게 지내던 이웃의 아픔을 내 일인 양 함께 견디어주던 북아현동 그 골목길 사람들.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 서로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 안에서 이마 맞대고 살던 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동네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면 필경 그녀는 온전한 정신으로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힘겨워하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울지 않게 되었다. 골목은 다시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수제비나 부침개가 수시로 담장을 넘나들고, 딱지치기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골목 구석구석으로 스며들 즈음 다시 한번 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옥자 아버지의 친척 되는 사람이 다녀가더니 다음 날 옥자네 마당에 차일이 쳐졌다. 머리에 흰 나비 핀을 꽂고 흰옷을 입은 옥자가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는 사이로 낯선 사람들 몇이 끙끙거리며 관을 들고 올라왔다.
초상집치고는 참 조용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왜 이제야 왔냐고,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느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말없이 제를 지내고, 조용히 발인하였다. 내가 본 옥자 엄마의 모습 중 가장 침착한 표정이었다고 기억된다. 동네 사람들 역시 이것저것 묻지 않고 그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 밥을 먹였다.
그날 이후로 옥자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입성도 말끔해지고 삐죽삐죽하던 머리도 고무줄로 단정하게 여며졌다. 언제 옥자네가 이사를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한동안 적막이 감돌던 그 집 마당을 기웃거리며 고무줄놀이를 잘하던 옥자를 그리워했던 것만 삽화처럼 떠오른다.
한 인간이 깊이 절망하는 모습을 난생처음 목격했던 그때가 생각날 때면, 기댈 어깨 내어주고 시린 등 덮어주던 담요 같은 온정도 함께 떠오른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터널 안에서 넘어지고 주저앉으며 벗어나려 안간힘 쓰는 그녀를 막무가내로 밀어내거나 잡아끌지 않고 곁에서 같이 걸어주던 골목 안 사람들.
집집마다 밥상에 오르는 김치가 어제는 앞집, 오늘은 뒷집에서 준 것이라 누구 엄마의 솜씨가 더 좋은지 훤히 알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 그 누구도 문을 잠그지 않아 시시때때로 아무 데나 불쑥 열고 들어가 내 집처럼 물도 마시고, 때가 되면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밥상에 끼어 앉도록 틈을 내어주던 정답던 이웃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우울증 앓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간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게 감돌던 그 골목이 가슴 뻐근하도록 그리워진다.
■ 프로필
도서출판 SUN 대표,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수필가, 수필집:⟪바람의 선물⟫⟪너를 위한 노래⟫⟪우는 방⟫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