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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 待 隨 筆) 이현숙 ‘아버지의 연못’
기사입력  2024/01/05 [23:28] 최종편집    이현숙 수필가

 

▲ 이현숙 수필가 

 

어르신, 문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색연필로 그린 아버지의 연못에는 아버지가 없다. 검은 머리며 팔뚝의 파란 힘줄이며 젊은 아버지는 보이면서, 보이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그림 속의 나는 작은 연못에서 놀고 있다. 꺽지 피라미 메기 쏘가리는 친구들이다. 아버지는 강물 속에서 어항을 살피시는 중이다. 연못 놀이는 밤잠도 설치게 했다.

 

물에 무엇을 새길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을 보면 새겨진 것들이 떠 오른다. “쓱쓱 싹싹숫돌에 낫 가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설렜다. 새끼줄로 챙챙 감긴 낫과 야전삽은 필수품이었다. 몇 번이고 자다 깨던 새벽,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언니와 나는 새끼줄로 묶은 두 개의 유리 어항을 깨뜨릴세라 맞잡았다.

 

강변 아까시나무는 새하얀 꽃을 족두리 구슬같이 수렁수렁 늘어뜨린 채 향기를 뿜어대고, 강물은 푸르고 세차게 흘러갔다. 거침없이 아까시나무를 치면 모래밭엔 신기루같이 초막이 세워졌다.

 

우리는 꿀벌인 양 꽃꿀을 빨거나 잎 떼기 놀이에 열중했고, 엄마는 챙겨 온 보따리를 풀어 소꿉놀이하듯 차려놓고, 강물을 바라보곤 하셨다. 아버지는 야전삽으로 순식간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사륵사륵 모래 알갱이가 살아 움직이면서, 살랑살랑 맑은 물이 차올랐다.

 

기다림의 시간, 가슴 속에도 무언가가 차올랐다. 용궁이라도 꾸미듯, 조약돌을 깔아주고 수초를 뜯어 넣어주었다. 연못 속 돌멩이에 어룽어룽 비추는 햇살에 마법의 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어르신이 없어졌어요!”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보호사들은 요양원에서 멀리 떨어진 강변 갈대숲 길에서 아버지를 찾아냈다. 직진하는 특성이 요양원 노인들의 공통점이라지만, 아버지의 걸음은 워낙 빨랐다. “어르신, 문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요양원이 아버지에게 어떤 곳일지 생각하면 먹먹했다. 강변 풍광이 좋은 곳이고 세심한 보살핌이 제공된다지만, 아버지는 연못에 갇혀 계셨다. 우리들 유년의 뜰에 만들어주셨던 작은 연못에 갇힌 꺽지처럼 생의 허리가 꺾여 꼼짝달싹 못하셨다.

 

푸른 강줄기는 내 발을 유혹했다. 아버지가 어항 놓을 물속 자리에 어슷어슷 돌담을 쌓는 사이, 돌멩이를 뒤적이며 다슬기를 찾다가 강물에 몰래 발을 담그면, 간질간질 어디론가 나를 데려갈 것만 같이 속삭이던 물살! “강물에 들어오지 마라! 금방 잡아줄게!”

 

아득히 은빛으로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엔 알 수 없는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가 하염없이 바라본 것이 강물인지, 그 너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초막 앞의 연못으로 돌아와야 했다. 깻묵과 밥을 돌멩이로 짓이기면 고소한 냄새가 났다.

 

물고기들도 우리같이 깨떡을 좋아했던 걸까. 아찔한 꽃향기 속에 둘러앉아 김밥을 먹고 나면, 어항 속에는 생김새도 무늬도 다른 물고기들이 입을 마구 뻐끔거렸다. “! 놀고 있어. 또 잡아줄게. 잘 지켜라!”

 

꺽지가 커다란 눈을 끔뻑끔뻑하며 뭔지 모를 신호를 보내면, 우리도 눈을 끔뻑이며 신호를 보냈다. 빠각빠각 소리가 요란한 빠가사리가 수염을 흔들며 어른인체하면, 두 손으로 수염 쓰다듬는 흉내를 내고, 손에 잡히는 적이 없는 눈치를 따라 재빨리 몸을 놀리며 눈치 빠른 척을 했다. 한나절이 지나면 두 손으로 살며시 피라미를 떠서 강물로 되돌려 보내는 놀이를 시작하곤 했다.

 

연못의 시계는 아지랑이같이 어느 순간 아스라해졌고, 세상이라는 강물은 소양강 급류같이 도도히 흘렀다. 안개 끼거나 눈비 내리는 날, 어두움의 커튼이 드리워진 생의 밤에는 물의 방향도 깊이도 알 수 없었다.

 

▲ 유난히 날마다 보따리를 꾸리신다는 아버지를 두고 요양보호사는 그게 치매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소풍 보따리를 꾸리시는 것만 같았다. pixabay.com  

 

강을 건너가는 법, 거슬러 오르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연못의 따뜻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름철 잠시 잠시 꿈같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지만, 가슴 어딘가에 우물로 남아 언제라도 퍼 올리면 푸석푸석한 삶을 촉촉이 적셔주곤 했다. 생각의 손을 거기에 담그면 개운해지고, 마음에 햇살이 너울거리며 온몸이 데워지곤 했다.

 

번번이 내동댕이쳐질망정 연못 밖으로 펄쩍 뛰쳐나가던 쏘가리의 용맹함, 피라미의 민첩한 이미지도 몸으로 가져와 흉내 내며 살았던 것 같다. 온몸에 사방팔방으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던 듯, 몸속 어딘가에 절벽 풍경이 고스란히 찍혀 들어 있다.그곳을 통해서 세상에 발을 디뎠던 듯싶다. 강변 기암괴석이 갖가지 무서운 형상으로 내려다보아도, 강물이 도끼날같이 시퍼렇게 흘러가도 연못은 안전했다.

 

오후의 햇살에 연못물이 더워질까, 드리워주었던 아까시나무 그늘, 우리와 협곡 은빛 강줄기를 번갈아 좇던 엄마의 아름다운 눈길, 슈퍼맨같이 오가던 아버지의 맨발, 나를 따라 뛰던 동생의 어질어질한 몸짓, 손가락을 스치며 온몸을 전율시키던 물고기 지느러미의 생동감, 빛나던 조약돌과 모래알들. 그 눈부신 것들, 휘어지며 반짝이던 낚싯줄의 포물선 같은 마음의 공간이 있어, 다시 힘차게 강물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연못과 요양원은 똑같이 강변에 있었지만, 아버지가 계신 곳은 존재 의미가 달랐다. 요양원은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 밖의 공간 같았다. 기억이 정전되어 버린 아버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에서 본 초현실 세계에서 살고 계신 것 같았다.

 

세상에서 추방당해 격리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아버지는 더 이상 물고기를 잡거나 삽질을 할 수 없었다. 마치 고물상에서 해체되는 기계처럼 꿈을 빼앗긴 사람같이 보여서 아버지에게 갈 때마다 내 발걸음은 심하게 흔들렸다. 내가 호시탐탐 강물에 발을 담갔던 것이나, 아버지가 강물을 자꾸 기웃거리시는 건 비슷하지만, 나는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고, 아버지는 당신이 살았던 세상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우리에게 매번 새로 만들어주던 연못은 언제나 새로웠고, 꿈꾸게 하던 곳이었다. 요양원에서는 어떤 꿈을 꾸고 계실까. 아버지는 요양원이라는 연못에 갇혔다고 생각하셨는지, 연못의 물고기처럼 끝없이 요양원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것 같았다. 요양원에 삶을 저당 잡힌 아버지는 시간에 사위어 갈수록 정신이 야위어갔지만, 자식들은 그곳에도 삶의 꿈이 있을 거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 삶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도 하고, 어려운 삶을 소풍으로 여기며 이겨내셨던 역사가 담겨 있는 듯도 했다. pixabay.com  

 

아버지는 요양원 휴게실의 어항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금붕어는 쏘가리로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가끔 강변의 별 같은 시간을 추억하듯이, 아버지도 고단했던 삶 속에서 소풍으로 기쁨을 일구던 그 시간의 밧줄을 잡고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보~~” 겨울 햇살 스러지는 것 같이 희미한 여읜 목소리, 그리곤 툭 한 방울 눈물을 떨구시던 아버지. 나의 얼굴에서 아스라한 기억의 바구니를 더듬으며 젊은 시절의 아내를 떠올리신 것 같았다.

 

유난히 날마다 보따리를 꾸리신다는 아버지를 두고 요양보호사는 그게 치매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소풍 보따리를 꾸리시는 것만 같았다. 메밀 전과 감자떡을 펼쳐놓고, 아버지 침대 옆의 보따리를 열어보았다. 우산 옷가지 휴지 볼펜 음료수 등, 소소한 삶의 일상이 작은 배낭 안에 들어 있었다. 삶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도 하고, 어려운 삶을 소풍으로 여기며 이겨내셨던 역사가 담겨 있는 듯도 했다.

 

그림 속에서는 아직도 동생이 고무신으로 물고기를 떠서 강물로 나르고 있다. 매번 내 작은 손가락을 빠져나가던 물고기들. “용궁으로 가기를~!” “엄마 찾아가기를~!” “자유롭게 물살 헤쳐 가기를~!” 내 유년의 연못은 가슴속에서 갈수록 깊어지는 중이다. 아버지의 연못은 높이 밤하늘에 떠 있다. 별이 뜨는 밤하늘에서 아버지는 오늘도 파란 연못을 만들고 있다.

 

 

프로필

춘천 출생, 가톨릭대(성심) 국어국문학, 백석대 상담학 가정사역 전공(MA) 고등학교 교사, 은퇴 후 현 광주광역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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