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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오얀 밤안개 속 흔적도 없이”
기사입력  2024/06/04 [23:47] 최종편집    림삼 시인

 

 

 

 

밤안개 낀 강변북로

   

 

▲ pixabay.com


 

 

밤안개 낀 강변북로

잿빛 하늘 가스등 걸린,

세우로 날리는 불빛 사이

아련한 방황 실루엣되어 남는

그대 목소리 묻어납니다

 

그대 어차피 약속 같은 건

슬프니까 하지 말았어야죠

 

언제이건

곁에 있는 사람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그냥 그윽히 바라만 보면

더 좋을 걸 그랬어요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어서

더욱 잊혀질 수 없었던 그 순간,

 

모든 사랑은

댓가가 필요한 줄 알기에

그대 내 인생에 들어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며 돌아설 제

 

꿈속처럼 들려오던

사랑한다는 그 말이

나를 그렇게

슬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강변북로 끝나는 밤의 한 지점에 서서

 

아낌 없이 전부 주었던

그대의 진솔한 사랑에

흠뻑 취했던 청춘시절의 나는

이제 죽어가고 있습니다

 

뽀오얀 밤안개 속으로 침몰되어져

흔적도 없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詩作 note

림삼 제 6시집 인생 복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아마도 30년 쯤 전이었던 듯 하다. 당시에도 강변북로는 자동차 전용도로였지만 그래도 운전 도중에 차에서 내려 도로 가에 잠시 정차를 하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장소가 더러 있었다. 이 시는 세상이 고요에 잠겨있던 어느 깊은 여름밤, 거기 한 곳 어딘가에서 불쑥 차를 멈추고, 방금 헤어진 인연을 떠올리며 아파하면서 적었던 시다.

 

사람이 헤어진다는 건 무얼까?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이별을 경험하면서 또 그만큼 많은 아픔을 느껴오다 보면, 이젠 그럭저럭 헤어짐을 대하는 심상이 조금은 무뎌질 만도 하건만, 어찌된 연유인지 갈수록 이별하는 아픔은 가슴 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 더욱 더 저며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별을 한 숫자만큼 아픔도 비례하여, 그 전의 상흔까지 헤집어버리는 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불변하는 진실인 걸까? 그래서 이토록 이별이라는 굴레가 무겁고 버거운 걸까?

 

문득 투영되는 옛 이별의 기억이 오늘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하는 필자의 애잔한 가슴을 슬그머니 건드리고 간다. 식전 무렵, 오래 전의 인연이었다고 흘려버리기에는 참 안타까운 이별을 했던 어느 지인의 부고를 접했다. 아직은 세상에서 할 일이 좀 더 남았을 거라고 여기기에 멀리서나마 행운을 기원하던 사람이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이즈막에 몹쓸 병에 걸려 한참을 병마에 시달리다가 그예 영면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허기사 고통으로 점철된 이승의 삶이라면 무에 그리 미련이 남았을까? 훌훌 떨쳐버리고 내세를 향한 첫걸음을 떼는 것도, 그렇게 죽음도 삶의 한 방편이라 간주하며 길 떠나는 것도 상책일 거라고 여기면서 깊은 속에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슬그머니 닦는다. 그냥 그저 고이 가시라. 곱게 가시라. 남겨진 회한일랑 거품인 양 죄다 없애버리고, 고통 없는 그 나라로 훨훨 날아오르시기만 하라. 긴 이별을 받아들이며 길게 한 번 기억의 추를 흔들고는 이내 그 추억의 장을 닫으려 한다. 어차피 하나는 아직 예 남겨지는 운명인 것을.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일의 현충일을 위시하여 하순에 들어있는 한국 전쟁의 그날까지 두루 생각하면서, 조국과 우리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의 숭고한 교훈을 간직해야 하는 달이다. 물론 이 달만 그렇게 하고 잊으라는 건 아닐진대, 그럼에도 과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의미가 얼마나 실감이 나고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서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이기적인 상술만 만연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이 분별없는 무질서 앞에서 누가 있어 선열과 영령의 은덕을 간직하자고 자신있게 말할 건지, 어찌보면 개탄스러운 실상에 짐짓 침을 삼키게 된다.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가가? 사회 지도층이? 군이나 관의 인사들이? 재벌이나 종교계가? 아니면 문화를 좌우하고 있는 연예인이? 국위선양의 수호자인 체육인들이? 어느 누구도 자기 살 길, 제 할 일만 바쁜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그렇다면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맡기기가 영 쉽지 않다.

 

그렇다. 이젠 서민이라고 불리는, 소시민으로 분류되는, 그렇게 영세민의 하나인 필자가 마지막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비록 가진 것 없으며, 나이 들어 활력 빠지고 기력 쇠한 처지이지만 남은 영육의 힘 모두어서 나라 위한 충정으로 한 소리 하련다. “이 쓸개빠진 중생들아. 정신 차려라. 우리가 언제부터 이리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이다지 하릴없는 싸움질만 일삼는 거냐? 계속 이러다가는 정말 하루 아침에 거덜날 거다. 순식간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무리에게 먹히고 말 거다. 제발, 제발, 이제부터라도 정신줄 다잡고 정심으로 살아가잔다.”

 

공적인 지면에 이런 터무니 없는 욕설을 썼다고 혹시 어디서 호출을 하거나, 생각이 다른 열혈지사로부터 협박이나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은근히 켕기기는 하지만 모처럼 심중의 말을 옮기고 나니 후련하기는 하다. 허기사 쥐뿔도 없는 글쟁이 팔자에 이런 기회 아니면 어디 가서 목소리 높일 주변머리가 있기나 할까? 언감생심 남의 눈치나 보면서 평생을 살아온 처지인지라 이미 가자미 눈이 되어버린지 오래인 걸.

 

사실 필자의 6월은 남달리 호국보훈의 의미가 절절한 달이다. 여섯 해 전에 90여년의 천수를 다하시고 소천하신 아버지께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바 있는 혁력한 한국전쟁의 참전 상이용사이셨다. 그 덕에 대전 현충원의 양지바른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셨으면서도, 혼자는 쓸쓸하시다 여겨 소천하신지 5개월 만에, 그 새를 못참고 불러가신 동갑내기 반려자인 어머니와 함께 다정스레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추모하는 뜻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소속 분대가 전멸을 당하는 와중에도 홀로, 통신장비를 메고 계시던 덕에 뒤에서 터진 적군의 포탄에 머리를 다치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셨다는 아버지는 평생을 머리 뒤 쪽에 포탄의 파편을 담고 사셨다. 뇌에서 가까워 너무 위험한지라 수술도 할 수 없었고, 금속성분 때문에 단층촬영도 되지 않았지만 X선으로 확인하는 아버지의 머리 속에는 엄지 손톱보다도 큰 파편이 박혀있는 게 그대로 보였었다. 정말 천우신조라 아니 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물론 그 후유증으로 이런 저럼 잔병치레로 고생은 하셨고 한 평생 심한 수전증에 시달리시며 반신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셔서 힘든 일은 하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제법 장수하셨으니 하늘의 큰 축복이라 여기고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 아버지는 젊어서도 거의 경제 활동을 못하셨기에 늘 어머니께서 가정의 주춧돌 역할을 대행하시며 4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세상의 으뜸이셨던 아버지는, 비록 젊어 한 때는 좌절과 비관으로 방황하신 적은 있었지만, 중년 이후 신앙을 가지신 다음부터는 정말 활발한 선교활동과 봉사에 앞장서시며 국내외의 교회 개척도 여러 군데 이루어내신 선구자이셨다.

 

그리고 당신의 애국심을 자식에게 승계하여 큰 아들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켜 끝내는 육군참모총장으로 길러내시는 쾌거를 이루셨다. 게다가 둘 째인 필자도 학군장교로 임관하여 특전사의 간성으로 양육하셨으나 워낙 모지리인 자질 탓에 스스로 중도 포기하고 세상 구석에서 되지 않는 글이나 쓰며 가난에 찌들어 있는 팔자로 차리매김된 걸 바라보시면서 혀를 차시던 모습,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아픈 손가락이라 여겼을 게라고 느끼며 이제까지도 뜨끔해져서 고개 숙인다.

 

미국시민 된지 30년 넘은 셋째 아들도, 석사학위까지 받으며 어린이집 원장으로 살아온 막내 딸도, 다들 세상의 한 축이 되어 각자 있는 자리에서 이름 석자 잘들 새기고 있으니 아버지의 삶은 예컨대 후회도 미련도 없으실 거다. 그게 오늘 필자가 제법 호기롭게 호국보훈의 달을 사는 이유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찾아뵙는 아버지의 영면 터에 꽃 한 다발, 커피 한 잔을 기꺼이 올려드리는 의미다. 그리고 또 자식들 계속 잘 되게 가호를 베풀어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하는 까닭이다.

 

오늘은 작심하고 필자의 가족사를 나열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으로 시작노트를 빚어보았다. 수십년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도 웬만하면 들추지 않는 사적인 사연인지라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마치 어린이들의 백일장처럼 너저분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은 적어볼까 하는 속내가 있었기에 모처럼 가족사의 일면을 조금 공개한 셈이다.

 

이별로 시작한 우리네 삶은 이별로 귀결한다. 그게 세상의 진실이요 진리다. 모름지기 이별 없는 삶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이별은 일상이다. 우리가 이별을 겪으며 더욱 성숙되고 여물어져야 하는 이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별하며 산다. 이별의 아픔을 쌓으면서 이별을 사랑하려고 애쓰면서 그리 산다. 아프지만, 조금은 슬프고 눈물겹지만 우리가 이별을 멀리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 밥 먹듯 흔한 우리의 이별들. 까짓것, 이별 좀 마음껏 해보라고 하지, . 그런다고 우리가 아주 쓰러지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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