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경순 작가

● 벙어리 노예 이솝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이솝은 프리기아의 아모리움에서 태어났다. 프리기아는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인 프리기아어를 사용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문자를 썼다.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 이후 해외로 진출하여 많은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그리스에 접한 프리기아 해안은 모두가 그리스의 영향권에 들어있었다.

청년이 된 이솝은 프리기아와 리디아 간의 전쟁 중에 프리기아의 패배로 전쟁포로로 잡혀서, 리디아의 어느 집 노예로 팔려갔다.

곱추며 어눌한 반벙어리 노예 이솝에게 어울리는 일은 없었다. 안주인은 질색하며 즉시 이솝을 부엌으로 내쫓았지만, 장작도 못 패고, 채소 다듬는 일이나 요리도 할 줄 몰랐다. 집사는 이솝을 주인 아들 놀이방으로 보냈다. 버릇없고 장난기 넘치는 어린 아들은 처음에는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 없이 뻣뻣한 이솝에게 금방 흥미를 잃었다.

이솝을 측은히 여긴 집사가 노부인에게 이솝을 부탁했다. 갈 곳 없이 서성이는 키 작은 노예를 몇 번 눈여겨보던 신앙심 좋은 노부인은 이솝을 데려다가 안쪽 손님방에 두었다. 이솝은 노부인에게 언제나 공손하였고, 노부인은 이솝에게 다정하였다.

▲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이솝은 프리기아의 아모리움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에 접한 프리기아 해안은 모두가 그리스의 영향권에 들어있었다.

“노예는 완전한 벙어리가 좋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절대 소리조차 내지 말아라.” 이솝은 노부인의 말처럼, 노예는 말을 못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 집에서 이솝은 몇 년간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노부인을 전담하던 이솝은 노부인의 사망으로 시골 농장으로 쫒겨나고, 고달픈 노예 생활이 시작된다.

초가을이 되었다. 포도작황 확인을 위해 농장에 내려온 주인을 만나려던 이솝은, 소작농이 주인에게 주려던 무화과 열매를 훔쳐먹은 죄를 뒤집어쓴다. 졸지에 이솝은 노예가 주인의 무화과를 훔쳐먹은 죄인이 되어 채찍으로 맞아 죽어 마땅한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관리인의 채찍을 피해 이솝은 주인의 바짓자락을 붙들고, 마실 물을 달라고 애원한다. 급기야 이솝은 맹물을 토해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같은 방법으로 범인을 밝혀냈다. 그러나 주인은 이솝에게 냉정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노예 이솝을 귀찮은 듯 무화과를 훔쳐먹은 범인 중 하나인 관리인에게 주어버린다. 관리인도 이솝을 반기지 않았다.

마침 가축을 사러온 노예상인에게 이솝은 자신을 사달라고 애원하였다. 애처롭게 매달리는 이솝을 헐값으로 3오볼에 산 노예상인은 짐을 들고 따라나선 이솝에게 물었다. “내가 꼭 너를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혹시 협박을 당하거나, 죽을죄를 지었느냐?” “제가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거기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이솝은 도둑으로 몰렸던 ‘무화과 열매’ 사건을 얘기해주었다. “어쩐지. 네놈이 하도 절박해 보여서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 너는 어디 사람이냐. 글은 읽을 줄 알아?” “프리기아에서 왔습니다. 글을 압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 이솝은 맹물을 토해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같은 방법으로 범인을 밝혀냈다. 그러나 주인은 이솝에게 냉정했다.

● 우화 ‘낙타’

처음으로 낙타를 본 한 사나이가 새로운 물건을 보고 놀라서 도망을 쳤습니다.

다음에 낙타를 보았을 때, 사나이는 낙타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보았을 때 그는 용기를 내어 낙타의 혹에 끈을 걸었습니다.

낙타는 이제, 사막을 걷는 여행자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습관이란 이처럼 모든 것을 친밀하게 느끼게 합니다.

“제가 처음에는 낙타처럼 이상해 보였어도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잘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은혜를 알고,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저를 살려주신 주인님을 위해 무엇이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노예상인은 이솝의 말이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노예상인이 이솝을 데리고 나타나자 나무 그늘에 앉아있던 노예들이 와 하고 웃어댔다.

“가축을 사러 가신다더니, 이놈을 가축이라고 사온 겁니까?”

“이솝은 사막을 두 발로 걷는 자유로운 영혼의 낙타 사람이야.

너희를 즐겁게 해주려고 데려온 것이다. 어때, 재밌게 생겼지?”

노예들이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이솝을 보며 모두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두 발로 걷는 낙타 사람. 그럴듯합니다.”

“낙타가 사막에 완전하게 적응하여 체온이 밤낮으로 바뀌듯이 이 녀석은 자유롭게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졌지.”

노예상인도 이솝을 보며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노예상인의 재치 덕분에 이솝은 곧 다른 노예들과 즐겁게 잘 어울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