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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백임현 ‘자존심과 열등감 사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제일 잘나가”
기사입력  2020/11/14 [18:32] 최종편집    백임현 수필가

제법 야무지고 개성 있어 보인다.

  

▲ 백임현 수필가   

옛날 사진첩에서 내 유년시절의 사진을 다시 본다. 대여섯 살쯤은 되었을까. 가족사진 맨 앞에 똑바로 서서 두 주먹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서 있는 내 모습은 제법 야무지고 개성 있어 보인다. 참 마음에 드는 인상이다.

 

인생의 어느 한때라도 내가 그처럼 당차고 똘똘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기분이 좋고, 원래 나 백임현의 태생은 그렇게 밝고 당당했던 것 아닌가 싶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위안이 된다. 그러던 내가 어찌하여 오랜 세월 본성을 잃고 자신 없는 열등감 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일까.

 

사진을 볼 때면 늘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되면서 내 성격이 오늘처럼 만들어진 원인에 대해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맨 처음 문제가 되는 것은 초등학교 때 달리기였다. 나는 뜀박질을 못해서 달리기가 주 종목인 체육시간이나 운동회 때는 언제나 꼴찌를 도맡아했었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개인의 기량으로 등수가 매겨지는 함께 달리기에서는 꼴등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한반이 양 팀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내 차례에서 뒤처져 우리 편이 지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의 원망과 구박이 자심하여 말할 수 없는 설움과 상처를 받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뜀뛰기쯤 일등이나 꼴등이나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남들의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담력이 부족했던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큰 문제였다. 그때부터 침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시작된 것 같다.

 

주눅 들게 하신 아버님!

 

그러나 이런 일은 어린 시절 한때의 일로 시간이 지나면서 엷어지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라면서 나의 열등감을 결정적으로 심화시킨 분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원래 과묵하고 엄격하셔서 자식들을 주눅 들게 하신 분이었는데 내가 사춘기로 성장하기 이전부터 입버릇처럼 사람들 앞에서 저거 큰일이네, 여자가 얼굴이 저렇게 못생겼으니 어디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겠나. 참 못두 생겼다.” 정말로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얼굴이 정말 문둥이처럼 보기 흉한가 보다고 생각했고, 결혼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우울했다. 아버지는 이런 말을 장난삼아 하셨는지 모르지만, 무심히 던진 돌에 물속의 개구리가 죽는 것처럼 나에게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겨주셨던 것이다.

 

솔직히 내가 못생긴 것이 내 잘못인가.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여자로서 시집을 못 갈 정도로 못생겼다는 자격지심은 성격마저 위축시켜 자신감이 결여된 침울한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결혼할 때 전혀 인물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결코 내 얼굴이 젊은 날을 혼자 어둡게 보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열등의식은 어른이 된 후에도 좀처럼 가셔지지 않아 크고 작은 일상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자신이 열등하다는 무력감은 어떤 일에나 자신이 없어 뒷전으로 숨고, 내 존재에 대한 애정도 확신도 없이 어쩌다 세상에 잘못 태어나 한구석 얻어 사는 사람처럼 남의 인생 살듯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세상이 우열로 양분되어 있다고 보는 잘못된 편견, 그중에서 내가 속한 곳은 언제나 열등한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 자격지심은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나를 명랑하고 총명한 아이라며 예뻐하셨다고 한다. 그 밝은 성격과 기를 잘 살려 나를 키웠다면 지금보다는 좀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억울할 때가 있다.

 

세상을 우열이라는 등식으로 설정했던 그동안 나의 관점은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었다.     

 

 

4년 공부 못해 40년 동안.

 

요즘 가짜 학력문제로 학계, 연예계가 시끄럽다. 학력을 우대하는 사회 풍조가 이런 폐단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단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어 다행이다.

 

나는 가방끈이 짧다.”로 시작되는 박완서 선생의 어떤 글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문학을 하는데 가방끈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방끈이라는 말이 나오면 짧은 가방끈때문에 나는 기가 죽는다. 4년 공부를 못해서 40년 동안 혼자 애를 썼건만, 그 주눅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문단에 발을 들여놓게 되자 결혼 후 처음으로 나 개인의 이력이 필요했다. 학력도 써야 했고 경력도 써야 했다. 그러나 20대 몇 년 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이 경력의 전부였을 뿐, 오랜 세월 무명의 주부였던 내게는 내세울 경력도 학력도 없었다.

 

또 다시 내 존재가 초라하게 느껴져 당선의 기쁨보다 지성인들의 세계에서 앞으로 활동해야할 일이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겁부터 나는 것이 나의 고질적인 습성이다. 이런 엄마가 장성한 아들들이 보기에 너무도 안쓰럽고 딱했던 모양이다.

 

어머니 당당하세요. 작가가 되셨지 않아요. 어머니는 학력을 극복하셨어요. 자부심도 가지시고 자존심도 가지세요.” 아이들은 내게 아낌없는 격려로 용기를 주었다.

 

잘못된 인식도 편견도 자존심도 버렸다

 

내가 등단할 무렵 아버지는 병환이 위중하셨다. 나의 등단 소식을 들으신 아버지는 힘들게 말씀하셨다. “너를 이화대학 국문과 공부를 시켰으면 모윤숙이 되었을 것을.”

 

모윤숙을 이 나라 최고의 문인으로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이렇게 한탄하셨다. 하지만 내가 모윤숙이 못된 것은 부족한 내 자질의 문제이지 어찌 대학공부 때문이겠는가.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돌아가셨으니 죄송스럽다.

 

글쓰기 삼십여 년. 나는 글을 쓰면서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편견도 자존심도 버렸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나를 속박해 온 열등의 늪에서 헤어나고 있다.

 

좀 더 일찍이 세상을 겸허하게 애정을 가지고 살필 수 있었다면 뜀뛰기를 못한다고 해서,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또한 가방끈이 짧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도 큰 문제로 나를 구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허영이었다.

 

세상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함께 어울려 제각기 제 나름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며, 어떤 존재도 가치 있고 소중하다 비교하지 않으면 짧은 것도 없고 긴 것도 없다. 세상을 우열이라는 등식으로 설정했던 그동안 나의 관점은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었다.

 

프로필

1987동서문학으로 등단.

현대수필상 수상(1999)

황의순 문학상 수상(2013)

수필집: 놓치고 사는 기쁨(1999)

아침소리(2002)

강촌에 가고 싶다(2009)

텃밭에 머무는 사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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