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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공중보건의사 ‘마무리 단계’
기사입력  2020/01/06 [01:49] 최종편집    정상연 한의사

매력적인 섬 제주에서 공중보건의 복무

제주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치료에 헌신

실전 임상경험은 천운 이젠 새로운 도전

 

정상연 한의사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필자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나이로서 공중보건의사라는 신분으로 20173월부터 현재까지 약 34개월 동안 군복무를 이행하고 있다. 앞으로 약 3달 간의 복무기간을 채우면 비로소 전역을 하게 된다.

 

공중보건의사란 한의사뿐만 아니라 양의사, 치과의사 등의 세 가지 직군의 의사들이 병역을 이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4주간 군사훈련을 받고서 36개월 동안 공공보건기관에서 근무를 한다. 따라서 훈련기간을 포함한 총 복무기간은 37개월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이 육군 현역의 두 배가 넘는다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느냐고 묻고는 한다. 하지만 필자는 한의사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한다. 게다가 필자가 꼭 살아보고 싶었던 지역에서 일하고 있으니 불만이 있을 리가.

 

필자가 일하는 곳은 제주특별자치도이다. 매력으로 가득한 이곳으로 복무지역이 발표된 날,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필자를 축하해주며 매우 부러워했다.

 

제주도 근무를 임명받아 제주도청에 소집된 후에도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있었다. 바로 도내 근무기관을 배정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신입 공중보건의사들은 다소 열악한 곳에서 근무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추자도나 우도 같은 부속 섬 같은 곳들이 기피대상이었다.

 

다행이 필자는 최악의 근무지는 피하고 대정읍에 위치한 서귀포서부보건소에 배치되었다. 이곳은 제주 공항과 거리가 멀고, 보건소내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어 있다는 소문 탓에 많은 이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걱정이 앞선 채로 시작한 보건소 근무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육지에서 내려온 혈혈단신(孑孑單身)의 한의사를 보건소 직원분들이 안팎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새로 집을 구할 때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같이 돌아봐주시고, 마을의 편의 시설을 하나하나 일러주시기도 했다.

 

또 보건소의 같은 처지의 공중보건의사가 세분이나 계셨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의지하기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빨간 날에는 무조건 쉬고 6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공무원의 삶을 경험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서울에서 근무할 때 접했던 환자분들과는 다른 유형의 환자분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다. 대정읍은 지역적으로 마늘, 양파, 보리밭을 경작하시거나 뱃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일을 하실 때 기계를 쓰기보다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듯했다.

 

따라서 몸 이곳저곳에 퇴행성 변화가 오신 분들이 많았고 기혈(氣血) 또한 매우 부족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해안가에 사시는 분들이라 몸에 습()이 많이 축적된 맥이 자주 나타났다.

 

처음에는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서 서울에서 환자를 보던 방식대로 진료를 했다. 모든 침법은 하나로 통한다는 신념으로 서울에서 효과를 본 방법이면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환자의 치료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서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내려왔다고 자부했던 필자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다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환자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치료 만족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한의진료실이 붐비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접수 후 대기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다.    

 

한의학은 개인 맞춤 의학인데, 하나의 치료방법으로 모든 병을 고치려 했던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다행이도 예전 선배 한의사분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의 특성에 따른 유병률과 또 그에 맞는 치료 방법을 제시한 자료들이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필자는 제주도에 계신 환자들에게 맞는 치료법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넘겼던 분야에 대한 공부도 다시 할 수 있었고, 환자의 마음을 더 헤아려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오만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앞으로 필자가 나아가야할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이렇게 환자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치료 만족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한의진료실이 붐비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접수 후 대기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아르헨티나에 거주하시는 분이었는데, 한국에 왔다가 친척분의 추천으로 제주도까지 내려오셔서 필자의 진료실을 방문하셨다. 한국 체류시간이 길지 않아 충분한 치료를 해드리지는 못 했지만, 최선을 다해 진료를 봐드렸다.

 

정신없이 환자분들을 보다보니 공중보건의사의 첫해가 금방 지나가버렸다. 공중보건의사는 매년 제주도 내에서 근무지를 옮길 수 있었는데, 필자는 2년차에 제주 공항과 가까운 조천보건지소로 이동을 하였다.

 

물론 정든 환자분들과 보건소 직원분들 때문에 많이 고민했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사자성어 하나를 떠올리며 모질게 마음을 먹고 자리를 옮겼다.

 

결과적으로 조천보건지소로 옮긴 것은 좋은 선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전 근무지였던 서귀포서부보건소는 지소의 상급기관으로서, 규율이 엄격해 진료의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옮긴 조천보건지소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학회나 책에서 공부했던 치료법을 환자분들에게 폭넓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필자의 손에 익지 않은 침구(鍼灸)법을 구사할 때에는 환자분들의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기도 했다. 대놓고 다른 치료를 해달라고 불만을 제기하시는 분도 계셨다.

 

환자를 달래기도 하고 나의 주장을 접기도 하며 진료실에서 씨름을 하였다. 그래도 환자분을 낫게 해주고 싶다는 진심을 하늘이 아셨는지 그동안 작은 의료사고도 없이 환자분들을 잘 돌봐드리고 있다.

 

복무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는 현재는 새로운 치료법을 구사하기 보다는 그 동안 제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치료법만 선별해서 제공해드리고 있다. 2년간 초짜 한의사가 행하는 어설픈 치료를 묵묵히 견뎌주셨으니, 말년에는 보답의 의미로 최고의 서비스를 해드린다고 보면 될까?

 

이제 정말 제주도에서 이삿짐을 싸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공중보건의사로서의 삶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민간에서 페이닥터로 일할 때 경험할 수 없는 완벽한 삶의 질까지 누렸다.

 

20204월에는 민간의료시장에서 환자를 만나게 된다. 그곳은 어설프면 살아남지 못하는 정글이다. 다만 지난 3년간 환자를 보면서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치료 경험을 십분 발휘한다면, 계속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을 낫게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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